흡혈귀는 정말 있었다 — 무덤이 만들어낸 전설의 과학적 정체

1726년 겨울, 세르비아의 작은 마을 메드베자. 오스트리아 군의관 요한 플뤼킹거는 명령을 받고 무덤 여러 기를 파헤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죽은 자가 밤마다 돌아와 산 사람의 목을 조른다”고 호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가 관을 열었을 때, 시신은 썩지 않은 채 입가에 피가 흘러 있었고 손톱과 머리카락은 자라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군의관은 이 광경을 공식 보고서에 적었습니다. 제목은 〈Visum et Repertum〉, ‘본 것과 발견한 것’이라는 뜻의 라틴어였습니다. 이것은 한낱 괴담이 아니라, 정부에 제출된 행정 문서였습니다.

우리는 흡혈귀를 상상의 산물이라고 여깁니다. 망토를 두른 드라큘라 백작, 송곳니, 박쥐 같은 이미지 말입니다. 그러나 18세기 유럽 사람들에게 흡혈귀는 상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무덤을 열고 자기 눈으로 ‘무언가’를 보았으며, 그 광경을 설명하기 위해 흡혈귀라는 답을 떠올렸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시신은 왜 썩지 않았고, 입가의 피는 어디서 왔을까요. 흡혈귀 전설의 정체를 두고 그동안 광견병, 결핵, 그리고 가장 유명하게는 ‘포르피린증’이라는 희귀 혈액병이 지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답이, 사실은 가장 먼저 무너진 가설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 글은 흡혈귀라는 전설을 하나씩 해부합니다. 무덤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 그것을 오해하게 만든 과학, 그리고 사람들이 끝내 이 이야기를 놓지 못한 이유까지. 전설과 검증된 사실을 구분하며 따라가 보겠습니다.

흡혈귀의 증거로 여겨진 다섯 가지 현상과 그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비교한 대조표
흡혈귀의 ‘증거’는 모두 시신 부패로 설명됩니다

흡혈귀는 어떻게 ‘진짜’가 되었나 — 18세기 유럽의 공식 기록

흡혈귀 이야기가 단순한 마을 괴담을 넘어 유럽 전체를 사로잡은 데에는, 두 건의 ‘공문서’가 결정적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1725년 세르비아의 마을 키실예보에서 일어났습니다. 페터 블라고예비치라는 농부가 죽고 열흘 남짓 지나는 동안, 마을에서 아홉 명이 잇따라 사망했습니다. 죽기 직전 이들은 한결같이 “죽은 블라고예비치가 밤에 찾아와 몸을 짓누르고 목을 졸랐다”고 진술했습니다. 그의 미망인은 죽은 남편이 문을 두드리며 신발을 내놓으라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마을을 찾은 오스트리아 관리 프롬발트는 주민들의 요구에 떠밀려 무덤을 열었고, 그가 본 것을 보고서에 적었습니다. 이 보고서는 1725년 빈의 신문에 실리며 유럽 언론에 ‘뱀파이어(vampyri)’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활자화된 사례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가 도입부에서 언급한 아르놀트 파올레 사건입니다. 파올레는 1725년경 건초 수레에서 떨어져 목이 부러져 죽은 군인이었습니다. 그가 죽은 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그를 보았다며 죽어 나가기 시작했고, 5년 뒤인 1731년에는 열일곱 명이 비슷한 증상으로 사망했습니다. 사태가 전염병으로 번질 것을 우려한 오스트리아 군 당국은 군의관 요한 플뤼킹거를 파견했고, 그가 작성한 것이 바로 〈Visum et Repertum〉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기록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즐기려는 작가의 창작물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작성자는 마을의 이야기꾼이 아니라 제국의 행정관과 군의관이었고, 목적은 공포를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전염병의 원인을 가려내고 행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들은 흡혈귀의 존재를 ‘믿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무덤에서 목격한 기이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적었을 뿐입니다.

바로 이 지점이 흡혈귀 전설의 출발선입니다. 사람들이 본 것은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썩지 않은 시신, 흘러나온 피, 부풀어 오른 몸. 문제는 그것을 해석할 과학이 18세기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무덤에서 본 ‘증거’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18세기 유럽 마을 사람들이 한밤중 무덤을 파헤치는 모습을 코믹하게 묘사한 일러스트
18세기 흡혈귀 소동을 묘사한 상상도 (AI로 제작)

무덤 속 ‘증거’의 정체 — 시신 부패의 과학

18세기 사람들이 무덤에서 본 것은 환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분명 실재하는 현상을 보았습니다. 다만 그것은 흡혈귀의 증거가 아니라, 시신이 부패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변화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흡혈의 증거’로 여겼던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시신이 썩지 않았다. 가장 충격적인 증거였습니다. 죽은 지 몇 주, 길게는 몇 달이 지났는데도 시신이 멀쩡해 보이면, 사람들은 그가 죽지 않았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러나 부패 속도는 온도에 절대적으로 좌우됩니다. 흡혈귀 사건이 유독 겨울과 추운 지방에서 많이 보고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차가운 땅속에서는 부패가 극적으로 느려져, 몇 달이 지나도 생전의 모습을 유지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습니다.

시신이 부풀어 있었다. 사람들은 부푼 시신을 보고 “산 사람의 피를 빨아 배가 불렀다”고 여겼습니다. 실제로는 부패 과정에서 체내 세균이 가스를 만들어 몸을 풍선처럼 팽창시켰기 때문입니다. 이 가스 압력 때문에 시신이 마치 살아 있는 듯 부풀어 혈색이 도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입가에 피가 흘러 있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보였던 증거입니다. 부패로 부풀어 오른 몸의 내부 압력은 폐와 위장에 고인 부패혈을 입과 코 밖으로 밀어냅니다. 사람들은 시신의 입가에 묻은 검붉은 액체를 보고, 간밤에 누군가의 피를 마신 흔적이라 확신했습니다.

손톱과 머리카락이 자라 있었다. 죽은 뒤에도 손톱과 머리카락이 자란다는 속설은 여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라난 것이 아닙니다. 사후 피부가 건조해지고 수축하면서 손톱 밑동과 두피가 뒤로 물러나, 손톱과 머리카락이 더 길어진 것처럼 드러나는 착시입니다.

시신에서 소리가 났다. 말뚝을 심장에 박았을 때 시신이 ‘신음’을 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 역시 자연 현상으로, 말뚝이 가슴을 누르는 순간 몸 안에 갇혀 있던 부패 가스가 성대를 통과하며 빠져나가는 소리였습니다.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가스가 차 있었다는 증거였던 셈입니다.

이렇게 흡혈귀의 ‘증거’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부패라는 단일한 과정으로 설명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흡혈귀를 물리치는 전통적 방법들 — 심장에 말뚝을 박고, 목을 자르고, 시신을 불태우는 행위 — 이 결과적으로 부패 가스를 빼내고 시신을 물리적으로 해체하는 일이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부패가 만들어낸 공포를 부패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잠재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병이었을까 — 광견병과 결핵

흡혈귀 전설의 정체로 거론된 광견병, 결핵, 포르피린증 세 질병의 근거를 비교한 그래픽
흡혈귀로 지목된 세 질병의 근거 비교

부패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면, 흡혈귀 전설은 그저 무지의 산물일 뿐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무덤 속 시신이 ‘흡혈귀의 흔적’을 제공했다면, 살아 있는 사람들 사이에 퍼진 두 가지 질병은 ‘흡혈귀의 행동’에 대한 모티브를 제공했습니다.

광견병 — 무는 흡혈귀. 흡혈귀 전설의 정체로 가장 설득력 있게 꼽히는 질병입니다. 광견병에 걸린 사람은 극도로 흥분하고 공격적으로 변하며, 때로 상대를 물어뜯으려 합니다. 빛과 물, 마늘 같은 강한 냄새에 과민하게 반응하고, 경련과 불면으로 밤에 깨어 배회하기도 합니다. 흡혈귀가 사람을 물어 같은 존재로 만든다는 설정, 밤에 활동한다는 설정, 그리고 무엇보다 ‘물려서 전염된다’는 핵심 개념이 광견병의 양상과 맞아떨어집니다. 광견병은 전근대 유럽에서 결코 드물지 않은 병이었기에, 흡혈귀 이야기의 가장 흔한 토대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결핵 — 생기를 빨리는 죽음. 광견병이 흡혈귀의 공격성을 설명한다면, 결핵은 그 ‘피해자’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결핵은 영어로 ‘consumption’, 즉 ‘소모병’이라 불렸습니다. 사람을 서서히 소모시켜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옛 이름은 ‘폐병’입니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점점 창백해지고 야위며, 기력이 빠져나가듯 천천히 죽어 갔습니다. 마치 무언가가 밤마다 생명을 빨아먹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게다가 결핵은 전염성이 강해 한 가족을 차례로 쓰러뜨렸는데, 세균의 존재를 모르던 사람들에게는 “먼저 죽은 가족이 무덤에서 나와 남은 가족의 생기를 빨아들인다”는 설명이 오히려 자연스러웠습니다. 뒤에서 다룰 1892년 미국의 머시 브라운 사건이 정확히 이 결핵 공포에서 비롯된 사례입니다.

정리하면, 광견병은 밤에 배회하며 물어뜯고 병을 옮기는 흡혈귀의 ‘공격성’을 설명하고, 결핵은 창백하게 생기를 잃어 가는 ‘피해자’와 그 죽음의 원인을 흡혈귀에게서 찾으려는 심리를 설명합니다. 무덤 속 부패가 눈에 보이는 증거였다면, 이 두 질병은 흡혈귀라는 이야기에 그럴듯한 인과관계를 채워 넣은 셈입니다.

그런데 흡혈귀의 정체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가장 확신에 차서 언급되는 질병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포르피린증’이라는 희귀 혈액병입니다. 흡혈귀는 사실 이 병의 환자였다는 주장은 한때 전 세계 언론을 뒤덮었습니다. 그러나 이 유명한 답에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오해 — “흡혈귀는 포르피린증 환자였다”는 틀렸다

흡혈귀의 정체를 검색하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답이 포르피린증입니다. 포르피린증은 혈색소(헤모글로빈)의 핵심 성분인 헴(heme)을 만드는 과정에 이상이 생기는 희귀한 유전성 질환으로, 일부 유형은 햇빛에 극도로 민감해 피부가 손상되고, 잇몸이 수축해 치아가 송곳니처럼 도드라져 보일 수 있습니다. 햇빛을 피하고, 송곳니가 두드러지며, 피를 갈구한다 — 흡혈귀의 이미지와 놀랍도록 겹쳐 보입니다.

이 주장은 1985년, 캐나다의 생화학자 데이비드 돌핀이 한 학회에서 발표하며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그는 포르피린증 환자가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피를 마셨을 것이고, 이것이 흡혈귀 전설의 기원이 되었으리라 추정했습니다. 《뉴욕 타임스》를 비롯한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흡혈귀는 사실 포르피린증 환자였다’는 이야기는 순식간에 전 세계로 퍼졌습니다.

그러나 이 가설은 과학적으로 따져 보면 허점투성이였습니다. 결정적인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피를 마셔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습니다. 입으로 삼킨 피는 위장에서 분해될 뿐, 환자에게 부족한 헴을 보충해 주지 못합니다. 포르피린증 치료에 혈액 제제를 쓰더라도 그것은 정맥에 직접 주사하는 방식이지,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즉 ‘피를 마셨을 것’이라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둘째, 환자가 피를 갈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포르피린증 환자는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본능적으로 알지 못하므로, 피를 마시고 싶어 할 까닭이 없습니다.

셋째, 민간 전설 속 흡혈귀는 햇빛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흡혈귀가 햇빛에 타 죽는다는 설정은 동유럽 민담에 없던 것으로, 1922년 영화 〈노스페라투〉가 만들어낸 비교적 현대적인 장치입니다. 정작 전설 속 흡혈귀들은 낮에도 멀쩡히 돌아다녔습니다. 포르피린증의 광과민성과 연결할 고리가 애초에 약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돌핀 자신이 이 주장을 담은 정식 논문을 한 번도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훗날 한 기자가 연락했을 때 그는 “그저 추측이었을 뿐”이라며 “오래전에 손을 뗀 분야”라고만 답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가설은 학계의 비판이 무색하게 대중에게 깊이 박혔고, 실제 포르피린증 환자들이 ‘흡혈귀’라는 낙인 속에 고통받는 부작용까지 낳았습니다.

이 대목은 흡혈귀 전설을 다룰 때 꼭 짚어야 할 지점입니다. 가장 유명하고 그럴듯한 답이, 사실은 가장 먼저 무너진 가설이었기 때문입니다. 흡혈귀의 정체에 더 가까운 것은 화려한 희귀병이 아니라, 앞서 살펴본 평범한 부패와 흔한 전염병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일어난 마지막 흡혈귀 사건 — 1892년 머시 브라운

흡혈귀라 하면 으레 중세 동유럽의 이야기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가장 잘 기록된 흡혈귀 사건 중 하나는, 놀랍게도 19세기 말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전기와 철도가 놓이던 1892년의 일이었습니다.

무대는 미국 로드아일랜드주의 작은 농촌 마을 엑서터였습니다. 농부 조지 브라운의 가족은 결핵으로 차례차례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1883년 아내가, 이어 큰딸이 세상을 떠났고, 1892년 1월에는 열아홉 살의 둘째 딸 머시 브라운마저 같은 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아들 에드윈마저 같은 증상으로 죽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의학으로 설명할 수 없게 되자, 사람들은 오래된 공포에 기댔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먼저 죽은 가족 중 누군가가 무덤 속에서 되살아나 산 가족의 생기를 빨아들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결국 아버지 조지는 마을 사람들의 설득에 못 이겨, 그해 3월 17일 의사와 이웃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가족의 무덤을 파헤치는 데 동의했습니다.

먼저 파낸 아내와 큰딸의 시신은 예상대로 백골에 가까웠습니다. 그런데 가장 최근에 묻힌 머시의 시신은 거의 부패하지 않은 채였고, 심장에는 아직 피가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이것은 결정적인 증거로 보였습니다. 머시야말로 가족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흡혈귀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앞서 살펴본 과학 그대로였습니다. 머시는 한겨울인 1월에 사망했고, 땅이 얼어 있어 곧바로 매장되지 못한 채 냉기 속에 안치되어 있었습니다. 불과 두 달 남짓, 그것도 추위 속에 보존된 시신이 덜 썩어 있고 심장에 피가 남아 있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현장의 의사도 이 점을 설명하려 했지만,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머시의 심장과 간을 꺼내 불태웠습니다. 그리고 그 재를 물에 타, 죽어 가던 동생 에드윈에게 마시게 했습니다. 죽은 가족의 일부를 먹으면 그 저주가 풀린다는 오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결핵은 그런 것으로 멈추지 않았습니다. 에드윈은 두 달 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국제적인 화제가 되었고, 흥미롭게도 1897년 《드라큘라》를 쓴 브램 스토커가 사망한 뒤 그의 서류 더미에서 머시 브라운에 관한 신문 기사가 발견되었습니다. 동유럽의 오래된 민담과 미국의 한 농촌 비극이, 한 권의 소설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아는 흡혈귀의 이미지로 이어졌을지 모를 일입니다.

미국 로드아일랜드 엑서터 체스트넛힐 묘지에 있는 머시 브라운의 묘비
머시 브라운의 묘비 (로드아일랜드 엑서터) — 1892년 1월 17일, 19세에 사망 (사진: Cbarry123,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그래서, 흡혈귀의 정체는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흡혈귀에게는 단 하나의 정체가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 오해가 오랜 시간에 걸쳐 겹쳐 쌓인 결과물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토대는 시신 부패에 대한 무지였습니다. 썩지 않은 시신, 부풀어 오른 몸, 입가의 피, 자라난 듯 보이는 손톱 — 흡혈귀의 ‘증거’라 여겨진 것들은 예외 없이 부패라는 자연 과정으로 설명됩니다. 증거의 강도로 보면 이것이 가장 확실한 정체입니다.

그 위에 전염병의 공포가 겹쳤습니다. 광견병은 밤에 배회하며 사람을 물고 병을 옮기는 흡혈귀의 공격성을, 결핵은 생기를 잃어 가며 죽는 피해자의 모습을 설명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죽음의 연쇄를 이해할 길이 없던 사람들에게, 흡혈귀는 가장 그럴듯한 인과의 이름이었습니다.

반면 가장 유명했던 답인 포르피린증은 가장 약한 가설이었습니다. 그럴듯해 보였지만 과학적 근거가 빈약했고, 정식 논문으로 검증된 적도 없었습니다. 흡혈귀의 정체를 찾는 일에서, 가장 화려한 답이 정답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정리하면 흡혈귀란, 평범한 부패를 오해한 눈과 전염병을 설명하려던 마음이 빚어낸 존재입니다. 거기에 수백 년에 걸친 입에서 입으로의 전승, 그리고 19세기 소설이 더해지며 오늘날의 이미지가 완성되었습니다.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18세기의 그 행정관과 군의관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본 것을 정직하게 기록했을 뿐이고, 다만 그것을 해석할 도구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흡혈귀를 비웃을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남긴 기록 덕분에 무엇이 진실인지 거꾸로 짚어 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전설은 사라졌지만, 그 전설이 가리키던 진짜 이야기 — 죽음을 이해하려던 인간의 오랜 노력 — 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