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나무들 중에는, 신라가 저물고 고려가 서던 순간을 지켜보며 지금까지 살아있는 생명들이 있습니다. 사람의 한평생을 스무 번 가까이 되풀이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를 찾다 보면 묘한 사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자료마다 수령이 제각각이고, “천 년”이라던 나무가 실제 측정에서는 그보다 적게 나오기도 합니다. 나무의 나이는 사람이 직접 세어볼 수 없기에, 오랫동안 전설과 추정에 기대어 부풀려져 온 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두 가지를 나누어 보려 합니다. 먼저 생장추나 정밀 측정을 통해 과학적으로 나이가 검증된 나무 세 그루, 그리고 수령은 불확실하지만 그 자체로 잊지 못할 이야기를 품은 나무 두 그루입니다.
검증된 최고령 — 과학이 확인한 나이
1위. 정선 두위봉 주목 — 약 1,400년

강원도 정선, 해발 1,340m의 두위봉 능선에 세 그루의 주목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그중 가운데 나무가 현재까지 국내에서 과학적으로 검증된 가장 오래된 나무입니다.
산림청 임업연구원이 생장추(나무에 가는 관을 박아 나이테를 직접 확인하는 방법)로 측정한 결과, 수령은 약 1,400년으로 추정되었습니다. 서기 600년 무렵 —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절터를 찾아 이 지역을 다니던 그 시대에 싹을 틔웠다는 의미입니다. 천연기념물 제43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추정 수령: 약 1,400년 (생장추 측정)
- 줄기 둘레 4.36m, 높이 17m
- 줄기 가운데는 오래전 썩어 큰 구멍이 생겼고, 외과수술로 충전재를 메워 생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거센 비바람과 눈보라가 몰아치는 산봉우리에서 1,400년을 버텨낸 나무입니다. “주목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공식 평가가 이 나무에 붙어 있습니다.
2위.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 — 약 1,320년

여기서 많은 분이 놀라실 대목이 나옵니다. 흔히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로 알려진 것은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지만, 정밀 측정 결과 은행나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였습니다.
강원도 원주 문막읍에 있는 이 나무는 기존에 수령 800년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드론과 3D 스캔, 라이다(LiDAR) 기술을 동원한 정밀 측정 결과, 2024년 기준 최소 1,317년에서 최대 1,332년으로 나이가 크게 올라갔습니다. 라이다 기술로 수령을 추정한 나무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기록입니다.
- 추정 수령: 약 1,317~1,332년 (정밀 측정, 2024년 기준)
- 높이 26.2m, 둘레 14.47m
- 안내판에도 “국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로 명시될 만큼 수형이 빼어납니다
기존의 통념을 측정 기술이 뒤집은 사례입니다.
3위.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 약 1,100년

가장 유명한 노거수입니다. 천연기념물 제30호로, 국가유산청 기준 수령은 약 1,100년으로 추정되며 한국에서 가장 키가 큰 은행나무로 꼽힙니다. 그런데 이 나무에는 흥미로운 ‘정정의 역사’가 있습니다.
오랫동안 이 나무의 높이는 “동양 최대, 60~67m”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1919년 기록은 63.6m, 2000년 자료는 67m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광파기와 라이다로 정밀 측정한 결과는 약 38~41m였습니다. 나무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그동안의 측정치가 부정확했던 것입니다. “동양 최대”라는 오랜 수식이 측정 기술 앞에서 정정된 사례입니다.
수치가 정정됐다고 가치가 줄어든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천 년을 넘긴 거목이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 잃은 한을 품고 심었다는 전설
-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자라났다는 또 다른 전설
- 조선 세종 때 정3품에 해당하는 벼슬(당상직첩)을 받음
- 정미의병 당시 일본군이 절을 불태웠으나 이 나무만은 화를 면해 ‘천왕목’이라 불림
“가장 오래됐다”는 수식이 늘 정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 나무가 보여줍니다.
전설의 노거수 — 수령보다 이야기가 깊은
수령으로는 위 세 그루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 사연만으로 충분히 기억될 나무들입니다.
4위.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 약 700년, 그러나 가장 극적인

수령은 약 700년으로 추정되지만, 이 나무의 진짜 이야기는 1990년대에 일어났습니다.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이 나무가 물에 잠길 위기에 처했습니다. 원래 용계국민학교 운동장에 서 있던 나무였습니다. 주민들이 보존을 청원했고, 한국수자원공사가 정부 승인을 받아 전무후무한 공사에 들어갔습니다. 나무를 베지 않고, 있던 자리에서 15m 높이까지 통째로 들어 올린 것입니다.
- H빔 공법으로 1990년부터 4년에 걸쳐 조금씩 상승
- 공사비 약 20~29억 원 투입
-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나무 이식 사례로 기네스북에 등재
- 그래서 “국내에서 가장 비싼 나무”라는 별명이 붙음
- 높이 37m, 둘레 14.5m로 국내 은행나무 중 가장 굵음
지금 이 나무는 인공섬 위에 올라서서,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풍경을 만들어냅니다. 사람들이 나무 한 그루를 살리기 위해 어디까지 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5위. 함양 운곡리 은행나무 — 약 800~1,000년, 마을과 함께한 시간

경상남도 함양 서하면 운곡리. 마을이 처음 생기던 무렵 함께 심겼다고 전해지는 은행나무입니다. 수령은 약 800년에서 1,000년으로 추정됩니다(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406호입니다.
- 마씨·오씨·김씨 성을 가진 이들이 샘물을 중심으로 정착하던 무렵 심겼다고 전해짐
- 마을은 이 나무에서 이름을 따 ‘은행정’이라 불림
- 높이 약 34~38m, 둘레 약 8.5m
- 1972년 보호수 지정 후 천연기념물로 승격
한 그루의 나무가 어떻게 마을의 이름이 되고,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나무입니다.
나무의 나이를 믿는다는 것
다섯 그루를 정리하며 한 가지가 분명해집니다. 나무의 나이는 생각보다 불확실하다는 사실입니다.
전설은 나이를 부풀리고, 측정은 그것을 바로잡습니다.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의 높이가 “67m”에서 실측 40m 안팎으로 정정되기도 하고,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의 수령이 800년에서 1,300년대로 도리어 올라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는 질문에는, 측정 방식과 시점을 함께 적어야 정직한 답이 됩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이 나무들이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운 시간을 견뎌왔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이들이 앞으로 또 천 년을 살아낸다면, 그때의 사람들은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요.